맴도십시오 (4/17/2017 #2)

미사 안에 늘 계시는 주님을 만나는 벅찬 마음을 나누는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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맴도십시오 (4/17/2017 #2)

Postby markclc_admin » Tue Apr 18, 2017 8:57 pm

요한 20:1-9: SND: 맴도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2가지 포인트가 떠오릅니다. 강생과 부활은 전례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의미적으로는 분리될 수 없는 쌍둥이 사건이라는 깨달음에서 나오는 성찰입니다.

1. 어제 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부활 후에 복음화의 선두주자는 여성임을 상기합시다. 여성들이 부활의 전령사가 된 것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마음 즉 예수님을 주변을 계속 “맴돔”에 있었음을 상기합시다. 마리아가 무더움의 어두움속으로 먼저 들어갔다는 것을 잊지맙시다. 그 의미없게 보일 수 있는 맴돔은 사랑 때문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사랑하면 떠날 수 없습니다. 세월호의 9명의 실종자 가족이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결코 실패하는 사랑은 이 세상에 없음을 여성들은 보여줍니다.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 다만 정의의 차원에서 수녀님들의 교회안에서의 복음의 가장 앞장선 전령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더 스스로에게 격려와 배려가 되는 부활이시기를 바랍니다. 정의란 "본래대로"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짐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역할은 막달레나처럼 “이웃의 혼돈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혼란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의 강생시의 모습이 아닌가요? 강생과 부활은 한가지 사건입니다.

2. 아침 식사후에 옆집에 계시는 가르멜 수도원의 십자가의 길을 가보게 되었습니다. 각처에는 두가지가 달려있었다. 1) 각처를 나타내는 번호 2) 각처가 의미하는 이미지. 그러나 15처에는 두 곳 다 공백. 아무 것도 없는… 무슨 의미일까?

오늘 마리아 막달레나와 두 제자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시작한 계기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것이 아니라 ‘빈 무덤’이라는 사실에 주목합시다. 마리아와 베드로와 요한이 빈무덤을 보고서 당장 느꼈을 어떤 허탈함이나 황당함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허탈함이나 황당함뒤에 오는 예수님의 생전의 말씀에 다시 접목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빈 무덤은 제자들에게는 허탈함이 아니라 구원의 공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2장) 바오로 사도가 말한 예수님의 “자기 비움”에 대한 것이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6-7) 예수의 이 땅에 오실 때의 ‘자기 비움’을 통해서 이제는 갈라졌던 하늘과 땅이 이어지고 죄로 인해서 끊어졌던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가 다시 시작되는 구원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자신을 비우시고 우리에게 오심으로서 이제 우리와 당신 사이에 존재했던 벽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오신 것이다. 부활의 빈공간으로 예수님은 우리가 빈공간을 뛰어넘어 그분께로 오라고 초대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다시 그분과 일치할 수 있는 길을 빈 공간으로 보여주십니다. 제자들이 다락랑을 비우지 않고 눌러 앉아 있었다면 부활체험은 없을 것이다. 피정을 할 때 우리는 충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방전이 먼저입니다. 그렇습니다. 강생과 부활은 한가지 사건입니다.

3. 결론: 부활의 의미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편지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15:13-14). 예수님의 부활은 과거의 역사이지만 현실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현재라는 이야기입니다. 15처가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것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남는 숙제는 오늘 복음에서 말하듯 필연성일 수 밖에 없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어떻게 나의 비어있는 삶에 그릴 것인가하는 질문으로 말입니다. 부활은 필연이기에 나의 모든 삶의 뿌리는 거기에 있어야한다는 것도 선택의 여지가 아닐 것입니다. 빈 무덤의 머리수건이 한켠에 개켜져 있었던 것처럼 부활로 우리의 삶을 재조정합시다. 우린 매일 매일 신앙의 새로운 영토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요새를 세우기 보다는 신앙의 탐험의 달리기를 매 순간 합시다. <潛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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