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9: 5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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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9: 51-62

Postby markclc_admin » Wed Jun 29, 2016 9:13 pm

루카 9: 51-62: 목 3동

오늘 루카 복음은 갈릴래아 지방에서 공생활을 하시던 예수님께서 당시의 정치와 신앙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가시기로 결심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도중에서 일어난 첫 번째 사건을 기록한 것. 루카복음 9:51부터 19:27까지의 부분은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100% 루카 복음만의 자료가 아니라 거의 80% 이상이 루카복음에서만 발견되어지는 자료이고 오늘 복음의 초반부는 루카복음만의 자료.

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찼다" (51)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는 죽음까지 포함해서 오로지 하느님 중심으로 예수님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맞추는 시간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이 생명력을 가지는 순간이고 하느님안에서 머무는 순간. 단순히 십자가에서 죽음의 순간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때가 찬" 것은 하느님의 소명을 이제는 온전히 실천할 시간이라는 의미.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더 엄격한 의미에서 실천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과연 언제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늘에 올라갈 때”를 생각하고 있는가요?

2. 오늘 약간 오해하기 쉬운 예수님의 모습: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을 보내신다" (52) 마치 미리 당신을 미리 대접할 준비를 하라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는 상황. 복음에서 예수님은 “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라고 하시지 않는가? (마르코 10:45) 이 말씀을 더 들여다 볼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매일 매순간 즉 하느님의 때를 살아가야한다고 알려주는 어쩌면 알 수 없는 주님의 심부름꾼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살펴보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싶다. 그 주님의 심부름꾼을 잘 알아보고 맞이하기를 청한다.

3. 복음속의 사마리아인들과, 머리 기댈 곳 조차 없다고 하시는 예수님을 따르라고 초대를 받거나 스스로 따르겠다고 호기있게 말하는 다른 마을 사람들의 공통점: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왜냐하면 사마리아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 마을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지나는 길이기에 거부하고, 다른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 장사를 먼저지내고 오겠고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먼저하는 조건을 채우고서야 예수님을 따르겠다고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바로 내가 생각하는 조건을 충족함으로써 가능하기보다는 주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뛰어드는 어쩌면 계산없는 뛰어듬을 의미한다. 비록 무모하게 보일지라도 말이다. 하느님 중심으로 생각할 때에야 일어나는 은총이 아닐까? 그리고 이미 뛰어들었으면 뒤로 돌아보지 말라고 하신다 (62)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때에 집중하고 응시하라는 말씀

결론: 오늘 복음은 과연 우리는 1) 예수님의 현존을 일러줄 주님의 심부름꾼을 알아차리고 만날 열린 마음이 있는가? 비록 그들이 나를 불편하게 할지라도 말이다 2) 나의 삶이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의 투신이 과연 어쩌면 바보처럼 보일 위험성을 받아들이는가를 일러주신다. 참 어려운 분부이시고 힘든 도전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어리석음을" 살아가는가를 고민하면서 주님을 만나는 한주간이기를 기도한다. (코린토 첫째 편지 4:10) <潛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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