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초대 (8/29/2016)

미사 안에 늘 계시는 주님을 만나는 벅찬 마음을 나누는 장입니다.
markclc_admin
Site Admin
Posts: 154
Joined: Wed Feb 24, 2016 10:49 pm

하느님의 초대 (8/29/2016)

Postby markclc_admin » Sun Sep 11, 2016 10:00 pm

루카 14: 1.7-14: 목3동: SND
오늘 복음 2부분: 1) 7-11절 (초대받은 자) 2) 12-14절(초대하는 자)
세상에 많은 문화. 그러나 세상의 근본적인 이치란 통하는 것임을 알았을 때. 오늘 복음도 크게 우리의 문화안에서 우리 부모님께로부터 자랄 때 자주 들었던 말들:
1. 조신해라: 처신 잘해라: 操身: 處身: 7-11
겸손: 동화작가 정채봉씨의 <세상에서 가장 짧은 동화>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래"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는 거야?" "잠간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야">>
하느님이 나에게 좋은 옷을 입히든, 누더기를 입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로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 아무리좋은 옷을 입더라도 우쭐하지 말고, 아무리 낡은 옷을입더라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묵묵히 자기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인가?
교만과 우상숭배는 쌍둥이: 하느님을 찾지 않고 하느님 대신 우리의 능력을 우선 믿기. 하느님의 작품인 다른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대하지 못하는 것. 크기보다 더 크게 보는 것. 크기보다 더 폄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와 무엇이 다를까? "주님을 경외함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의 길을, 사악한 입을 미워한다.” (잠언 8:13)
교만이란 결국은 자기가 아닌 것을 추구하는 허상이자 우상숭배가 아닌가? 예수님의 관심은 하느님이라는 것. 죽음의 순간까지 그래서 하느님을 버리지 못하는 것. 하느님을 경험한 사람은 자기의 자기를 아는것이니 낮은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을 듯.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2. 12-14: 우리의 크리스찬 삶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의미하는가?
교회에 대한 그리스어는 ‘에클레시아(ekklesia)’: ‘ek’(‘out’)과 ‘klesia’의 동사형 ‘kaleo’(‘to call’)의 합성어. 그리하여 에클레시아는 ‘~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 즉, 부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를뜻한다. 에클레시아는 본래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민들의 직접민주정치의 주체인 정치적 공동체를 일컫는 말인데, 성경은 이 용어를 하느님을 믿도록 부름 받은 백성들에 그 초점을 둠. 에클레시아의 단어를 생각할 때 우리가 고민해야하는 핵심은 “– 으로부터” 인가?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이라는 작은 이기심으로 부터… 어떤 울타리와 틀안으로부터 벗어나 부르심으로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 세상으로부터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백성들이라는 점. 에클레시아는 하느님이 불러내어서 모인 무리들. 교회는 세속적인 수많은 단체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어야. 즉, 교회는 모여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단체라는 의미 이상이어야…. 에클레시아는 가르침을 받으러 모이는 것이 아니라 부름 받았으니 모이는 공동체인 것이다. 어떤 구체적인 차이가 있는가?
1) 보상을 바라지 않는 마음: “형제 친척 부유한 이웃이 아니라 가난한 자, 장애인, 다리저는 사람들. 눈먼 사람들…
2)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하는것… 교황 프란치스코: 왜 안전한 곳에서 나와서 변방으로 나가라. 양냄새나는 목자가 되라고 사제들에게 요구하시는가? 우리의 근본이 자신에게서 벗어나서 밖으로 불림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
결론: 오늘 복음에서 “초대”라는 말에 주목하자. 초대란 바로 하느님의 우리를 향한 소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초대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자. 하지만 누가 초대받을때 초대받은 자리가 다르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부르심의 다양성과 쓰임이 다르다는 것으로 이해하자. 우리 작은 자기에게서 벗어나 하느님을 섬기는 교회 공동체로 사는 한 주간이 되자. <潛伸>

Return to “말씀의 창”

Who is online

Users browsing this forum: No registered users and 4 gue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