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35-42: SND
전례력으로 성탄시기가 끝나고 연중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연중시기를 외국어에서 의미로는 “일상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즉 연중시기는 예수님을 만날 때 성탄시기나 부활시기와 다른 방식으로 일상에서 평범함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야한다는 시기입니다. 이제는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하던 동방박사들이 보았던 밝게 떠있는 별처럼 눈에 분명하게 보이는 현상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 마음안에 살아숨쉬는 조용한 별에 귀를 기울이거나 세상에 숨겨져있어서 잘 드러나지 않는 희미한 별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 연중주일의 큰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중주일은 오히려 어느 때보다 예수님을 조용한 가운데 찾아나서는 탐구(searching) 시기입니다. 여기에서 찾는다는 것은 이곳 저곳 기울여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더 깊게 궁리하고 관계를 깊게하고 그분을 알아간다는 내적인 심화과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응시하는 태도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예수님을 응시하는 내적 심화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오늘 말씀에서 2가지 구체적인 태도를 살아보는 것입니다: “와서 보아라”.
와라: 예수님이 사시는 곳으로 오라는 말씀은 동방박사처럼 자기의 자리를 떠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자기의 자리를 떠난다는 것은 우리의 익숙했던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바꾸라는 말씀이십니다. 다른 복음에서 왜 예수님이 “회개하라”는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셨는가를 더 이해할 수있게 됩니다. “오라”는 말씀은 다름 아닌 사고방식의 전환을 통해서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예수님을 나의 사고방식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분의 삶의 방식으로 녹아들어가야하는 것입니다.
보아라: 예수님은 또 자기를 따라온 요한의 두제자에게 “보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행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보라고 하시는데 무엇을 보라는 말씀인가요? 과연 무슨 말을 하시는가? 무슨 옷을 입으셨는가? 무슨 음식을 드시는가? 어떤 작업실을 가지시고 있는가? 등등 그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말없이 옆에서 지켜보라는 말씀이십니다. 응시하는 사람. 지켜보는 자. 그 모습이 바로 무엇을 찾는 자의 큰 출발점입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는 그분과 함께 머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오늘 복음에서 읽게 됩니다. 번잡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제는 그분을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머무는 그것이 예수님을 알게 되는 큰 일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많이 해야만 좋은 신앙이라는 착각을 알아차리게하는 큰 말씀입니다.
기도, 공부, 행동: 쿠르실료의 3가지 삶의 기둥:
예수님을 옆에서 지켜보고 함께 머물렀던 안드레아사도가 이제는 자기 형님인 베드로까지 예수님과 머물게 하도록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예수님을 찾아나가는 과정에는 울트레야 공동체의 삶의 순환구조가 있음을 봅니다. 그 순환은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것임을 보기에 중요함을 다시 느낍니다. 안드레아는 주님을 따라갑니다. 따름은 바로 기도입니다. 찾으니 예수님이 그를 초대합니다. 하지만 그분이 먼저 우리를 초대하셨다는 사실을 잊지맙시다. 교황님의 중요한 신학: nos primerea.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장서 가신다. 안드레이는 예수님과 함께 묵습니다.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제 그분을 지켜보고 머물게 됩니다. 그분을 더 알아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안드레아는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베드로와 알리고 나누는 행동을 보여줍니다.
결론: 찾기 – 지켜보고 머물기 – 체험을 나누기. 즉 기도-공부-행동의 구조는 연중시기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영적 순환구조는 혹은 기둥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어디에서 막힌 곳은 없는지 나는 어디에서 가장 약한지를 보는 것은 좋은 성찰거리를 제공합니다. 올 한해 이 세 기둥을 성실히 살아갈 은총을 청합시다. 아멘. <潛伸>
와서 보아라 (1/1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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