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1: 25-30: SND
"나는 죽어서 누구로 기억될 것인가?"
세계적인 경영학의 석학 피터 드러커는 13세 때 학교에서 한 신부님의 수업시간에 이 물음과 처음 접했다. 당시 드러커와 친구들은 이 물음 앞에서 어리둥절해했다. 신부님은 그 표정들을 보며 "지금 여러분에겐 이 물음이 낯설겠지만 마흔 살이 지나 쉰 살 고개에 닿을 즈음엔 이 물음이 삶의 송곳처럼 다가올 것이다."라고 말함.
드러커와 그의 동창들이 졸업 60주년을 기념해 다시 모였을 때 누군가 신부님을 떠올리며 "나는 누구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물음이 삶의 송곳이 돼 나태해진 자신을 찔러 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폴 고갱의 그림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나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고갱이 타이티에서 최후의 유작처럼 삶의 열정을 바친 작품으로 이것을 마친 후 자살을 시도. 이 그림은 죽음은 언제나 종착역이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자 방향이자 생동감있는 삶의 연속성임을 일러준다. 삶을 살아가는 나의 현재의 태도에 대해서 미리 일러주는 것. 죽음은 결코 마침이 아니라 살아가야할 현재에게 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누구일까. 그리고 죽음 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에 대한 질문을 대면하지 않는다면 의문을 풀지 못한다면 우리도 이전의 어떤 사람들처럼 자신의 근본도 깨닫지 못한 채 허무한 죽음을 맞이할 것.
결론: 오늘은 돌아가신 분 특히 우리의 삶속에서 함께 하셨던 분들과 주님과의 온전한 결합을 기다리는 연옥 영혼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날. 어떤 분을 ‘누구로’ 기억하는 날. 훗 날 “우리는 누구로 기억될 것인가?” 오늘은 우리 살아있는 특히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해야하는 날. <潛伸>
나는 누구로 기억될 것인가? (11/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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